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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현장] 발레오만도 파업이탈자들이 털어놓은 이야기
박향주 편집부장 edit@ilabor.org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1984년 영국의 유명한 탄광지역 ‘더럼’이 배경이다. 실제 있었던 1984~85년 영국탄광파업을 노동자 가족의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다. 당시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는 탄광 일부를 닫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이에 전국탄광노조는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영화는 주인공 빌리와 친구를 비추며 시작된다. 거리를 걷고 있는 그들 뒤로 건물 외벽에 즐비한 ‘파업에 동참하자’는 포스터와 배치되어 있는 경찰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빌리의 아버지와 형을 비롯한 파업중인 탄광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이탈자들을 태운 출근버스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달걀을 던진다. ‘배신자’가 되어버린 이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른바 복귀자들을 만나기 위해 경주에 내려간 지난 12일, 동장군의 기세가 대단했다. 발레오만도지회의 복직투쟁은 더운 여름을 지나, 겨울까지 왔고, 결국 해를 넘겼다. ‘천막농성장 소식은 계속 들려오는데, 공장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단순히 공장 안 소식을 듣고 싶은 생각에 만든 자리였다. 하지만 회사의 감시가 심한 가운데, 그들의 눈을 피해 복귀자와 만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익명 등을 조건으로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 역시 가벼이 시작되지 못했다. 일단 나이, 근속년수와 같은 형식적인 질문으로 시작했다. 소주잔이 서너 차례 돌고 난 후에야 어색함과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고, 복귀자 ㄱ씨는 “혹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는 느낌 아냐”며 운을 뗐다.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휴식시간에 친한 동료 서너 명 있는 자리에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단다. 그런데 5분도 채 되지 않아 관리자가 찾아와 ‘그런 얘기를 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관리자가 찾아와 따지는 것도 물론 겁나지만 도대체 내 얘기를 누가 전했을까 그걸 생각하니 미치겠다고 하더라. 저 친구일까, 저 형님일까. 그런 일들이 계속 생기자, 휴식시간에도 다들 자기 차에 가서 쉰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 듣고 있고, 또 그것을 회사에 전달할 것이라고 상상해봐라. 지금 공장 안에는 나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복귀자 ㄱ씨는 “이런 분위기다보니 기존에 있던 동문회․향우회․써클이 잘 될 리가 없다”며 “회사가 만들어낸 억압적인 분위기 탓에 학교친구도, 고향형님도 모두 멀어져버렸다”고 털어놨다. 복귀자 ㄴ씨 역시 공장 안에 감도는 공포와 두려움을 전달했다. 복귀자 ㄴ씨는 “휴식시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관리자들이 라인을 돌린다”며 “빨리 들어와 일하라는 거지. 이러다 휴식시간마저 없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공장장이 담배 피는 걸 싫어한단다. 직원들 건강 생각해서 금연하라는 게 아니다. 내가 안 피니까, 니들도 하지 마라, 담배 한 대 필 시간에 일을 더 해라, 딱 이거다. 어이없고 치사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러니 눈에 안 띄는 담벼락 아래에 숨어 쪼그리고 앉아서 핀다. 아침체조 무조건 참석해라, 휴식시간을 꼭 다 채워 쉬어야 하냐. 휴식시간 끝나기 전에 일 시작해라, 노조가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은 넘쳐난다. 임금 깎이고 연월차휴가 없어지고 임금피크제니 정년축소니 정말 많은 것을 내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십 수 년 알아온 내 동료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는 것. 자유가 사라졌다는 것. 그게 제일 힘들다”  


복귀자 ㄷ씨는 “회사는 천막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 흔들어주지 마라, 눈도 마주치지 마라 얘기한다”며 “회사 들어오기 전부터 알았던 동네 형님, 친구들과의 오랜 관계가 다 깨졌다. 그것은 해고된 사람들은 물론 복귀한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복귀자 ㄱ씨는 “어른들 탓에 아이들까지 상처를 받고 있다”며 안타까운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사택아파트에 살다보니 어른들끼리도 친했지만,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쭉 같이 커왔다”며 “하지만 파업 이후, 아버지의 복귀여부에 따라 아이들 속에서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어졌다”고 설명했다.  


“지역공동체라고 하나. 그게 완전 파탄이 났다. 어른들도 힘들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더 크다. 유치원부터 시작해 계속 같은 공간에서 커 온 아이들인데, 어른들의 갈등이 어린 애들에게도 그대로 옮겨진 거다. ‘네 아버지는 배신자’라는 얘길 들어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떨까. 친했던 아저씨가 배신을 해서 우리 아빠가 해고됐다고 생각하는 그 아이들은 또 어떨까. 부인들은 물론, 부모 형제들까지. 경주가 대도시도 아니고, 한 집 건너 다 아는 사이들인데 회사야 뭐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나. 파업 깨고 노조 깨서 자기들 원하는 거 얻으면 그만이지.”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그렇다. 오랫동안 이어온 그들의 공동체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빌리의 형인 토니는 상점에서 우연히 만난 복귀자를 향해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며 “그런 네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냐”고 따져 묻는다. 관리자는 현장 복귀자들을 향해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 다행”이라며 훈계를 하고, 스쳐 지나가는 TV뉴스에서 영국 보수당 정권과 보수언론은 노조와 파업 참가자들을 ‘내부의 적’이라고 표현한다. 토니는 현장에 복귀한 친구를 향해 “노동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배신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그걸 지키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망한다”며 소리친다. 한 때 형제 같았던 친구가 남이 되고, 파업 참가자들과 이탈자들이 서로 욕설과 주먹질을 주고받는다. 정부와 자본가들 입장에서 가장 원하는 광경이자,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상황일 게다.  


몇 달 째 월급을 받지 못한 빌리 아버지는 땔감살 돈조차 없다. 결국 아내의 유품인 피아노를 부숴 불을 피우며 아버지는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발레에 재능을 보이는 빌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주기 위해 아버지는 출근버스를 탔다. 어제까지 달걀을 던지며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자리에 바로 자신이 앉은 것이다.  


복귀자들에게 공장으로 돌아갔던 시점에 대해 물었다. 복귀자 ㄷ씨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미안했고, 머리가 복잡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신학기가 되자 사람들이 많이 동요했다”며 “회사에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을 때 아내가 어쨌든 애들은 키워야하지 않냐 그러는데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된 친구로부터 “너라도 먼저 들어가 있어라. 민주노조 다시 세우려면 공장에서 할 일 많다”는 얘기를 듣고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단다. 그렇게 등 떠밀어주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귀자 ㄴ씨는 "얼마 전, 천막에 있는 친구한테 한 번 보자고 연락했더니 내가 불이익 받을까봐 싫다고 하더라"며 미안함을 나타냈다. 그 역시 “생활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월급쟁이들이야 매달 들어오는 월급 갖고 사는 건데, 몇 달 월급이 묶여버리니 감당이 안됐다”며 “며칠 전, 회사에서 금속노조 신분보장기금 다 떨어졌다는 내용의 벽보를 붙였던데 그것 보고 사람들 마음이 더 착잡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노조파괴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복귀자들도 잘 안다. 파업 이후 회사에서 뿌린 유인물, 가정통신문 다 모아두고 있는데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 회사 말 믿은 사람도, 설마 했던 사람도 모두 당한 거다. 금호건설인가 거기에서 사택아파트에 와서 실사를 하고 갔다더라. 낮에 집에 있던 와이프들이 다 봤지만, 회사는 아무 말이 없다. 머지않아 공장을 매각 또는 청산하려 할 거다. 사택 아파트 부지도 팔아넘기겠지. 우리 마누라도 실사 나온 사람들 보니 그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애들 엄마가 그런다. 그래도 아무 말 하지 마라. 지금은 살아야 한다. 애들 생각해라. 지금도 그렇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 복귀할 때 절실히 느꼈다."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뭘까. 복귀자 ㄱ씨는 “어용노조가 있긴 한데, 우리 노조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노조가 없어지고 어용이 들어서자 모든 게 다 달라졌다”고 얘기했다. 복귀자 ㄴ씨는 “노조를 깨면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니 회사가 오랫동안 노조말살을 준비해온 거 같다”며 “어쩔 때는 회사보다도 회사 앞잡이 노릇하는 어용노조가 더 밉다”고 말했다. 복귀자 ㄱ씨는 “예전에는 안전사고 나면 노조에서 즉각 대응했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사고가 나면 전부 자신의 책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왜 필요하냐면서 파업 때 구사대 노릇 열심히 한 선배가 있는데, 파업 끝나고 정년이 58세로 줄어버렸다"며 "그 분이 거기에 딱 걸렸다. 회사가 그럴 줄 몰랐다면서, 노조가 그동안 나를 지켜준 거였다면서, 엄청 울었다더라"는 사례를 전해주기도 했다.  


복귀자 ㄷ씨는 “복수노조 시행될 거라는 얘길 들었는데, 우리는 지금 당장 쉽지 않다”며 “희망이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절망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5년이든, 10년이든, 언젠가는 민주노조 다시 세울 수 있지 않겠나. 쉽지는 않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며 "이왕이면 더 나이 들기 전에, 먼저 복귀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보탤 수 있을 때면 좋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힘없고 어설픈 노조는 원하지 않는다. 다만 강경하기만 한 노조도 싫다”고 입을 모으며 "조합원들과 항상 소통하는 노조가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영화는 조합원들이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채 다시 어두운 갱도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나간다. 강경한 정부에 밀려 탄광노조가 '파업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수많은 탄광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이후 노동자들의 파업 때마다 우리 보수언론들은 당시 영국 탄광노조의 패배를 언급하며 정부와 회사를 향해 ‘영국의 대처처럼 불법파업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라’고 선동한다. 발레오만도 복귀자들은 이와 반대 입장과 다른 의미로 공장 밖 동료들에게 “힘내라. 끝까지 버텨보자”는 말을 전했다.   


“자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짓밟힌 만큼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간다. 노조가 없어 좋다며 떠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조가 있고 없고 차이를 이제야 제대로 느낀 사람들도 많다. 80년대 만도기계 시절에도 민주노조를 세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결국 됐다. 물론 한심한 소리 하네 그럴 수도 있다. 친구에게 '먼저 복귀해서 미안하다.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었다. 좀만 더 버티자'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지금 상황이 진짜 '지옥'이다. 버티고 있는 한, 언젠가는 될 거라 믿는다. 공장은 복귀자들이 지키고 있겠다. 천막에 있는 우리 동료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금속노조에서 끝까지 지켜 달라”.  


지난 10일 중노위는 발레오만도 해고자 전원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살을 에는 추위보다도 떠나간 동료들에 대한 섭섭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회사가 눈 가리고 귀 막고 있는 속에서도 공장 안 동료들은 담 너머 천막을 지켜보고 있다. 비록 영화 속 영국 탄광노동자들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현실 속 발레오만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시 찾은 자유와 민주노조로 그 끝을 맺길 바란다.


 


출처 :전국금속노동조합 경주지부 인지컨트롤스지회  글쓴이 : 교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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